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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대학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를 깨우는 전주사랑의교회

    크로스웨이 성경대학

      크로스웨이라는 말의 의미는 십자가의 길이라든지 십자가의 도라는 뜻이 아니다. 그 십자가는 모든 성경 메시지의 중심에 서 있으며 그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며 관계하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pivotal point)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비어 있다. 그것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고 계심을 의미한다.(He is alive, among us!)

      크로스웨이는 곧 교차로(십자로)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의미하며, 이 결단의 상황은 십자가가 인생들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게 하며,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할 것인지 아닌지를 십자가는 강력하고 심각하게, 우리 인생들을 결단에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도가 여러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이 십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데는 여러가지 각기 다른 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각기 인생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곧 인생의 교차로(crossway)요, 결단점이라는 뜻이다. 거기가 바로 주님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결단해야 하는 삶의 기로요 교차로(십자로)인 것이다.
      우리는 각기 처한 상황에서 각자의 경험과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다. 이 크로스웨이스(crossways)라는 말은 결코 십자가의 길이 여러개가 있다는 뜻이 아님을 주의해야 하겠다.
      십자가 인생들에게 요구하는 결단, 곧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를 주님으로 영접할 것인지 아닌지의 결단은 참으로 시급하고 심각하며 중대함을 이 느낌표는 의미한다.
      원이 의미하는 바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드라마 전체를 마치 원형극장에 앉아서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원계획의 드라마를 성경의 이야기 전체를 연구하고 조망함으로써 이해해야 된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신앙이 기쁨, 진리를 깨달은 기쁨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앙은 자기 한 사람만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신앙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과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손을 들고 있는 그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림으로써 이것도 두 사람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은 공동체적인 신앙, 곧 신앙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인주의 곧 사적인 기독교(private christianity)는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안에서 역사하셨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1권 하나님의 구원계획

      제1과 그림조각 맞추기 / 제2과 성경의 배경 / 제3과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 / 제4과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다 / 제5과 죄 심판 은혜 / 제6과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섭리
      제7과 긍휼과 언약들 / 제8과 광야와 유랑생활 / 제9과 왕들, 왕국들, 그리고 포로생활 / 제10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 제11과 새 출애굽 - 새 백성 / 제12과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
      제13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 요구 / 제14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 답변 / 제15과 나라가 지금 / 제16과 성경 / 제17과 세계(침례)와 출애굽
      제18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 제19과 예수 그리스도 / 제20과 성령 / 제21과 성경의 핵심 : 율법과 복음 / 제22과 마지막 날이 이를 때
      제23과 천사들과 천사장들과 함께 / 제24과 연회를 위한 준비 / 제25과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백성 / 제26과 기도의 특전 / 제27과 주기도문 / 제28과 구원받은 자의 책임
      제29과 이단들 - 옛날과 오늘 / 제30과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2권 구약권별 내용

      제1과 창조에서 그리스도까지 / 제2과 성경의 배경 / 제3과 태초에 / 제4과 성경의 처음부분 / 제5과 아브라함과의 언약 / 제6과 족장들의 세계 / 제7과 출애굽 / 제8과 시내산 언약 / 제9과 율법
      제10과 광야에서의 유랑생활 / 제11과 신명기 / 제12과 정복 / 제13과 거룩한 싸움(聖戰) / 제14과 / 제단과 성막과 성전 / 제15과 사사들 / 제16과 왕을 세울 것인가 세우지 말 것인가 / 제17과 다윗
      제18과 하나가 둘로 / 제19과 둘에서 하나로 / 제20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 제21과 아모스 / 제22과 호세아 / 제23과 유다왕국의 말년 / 제24과 이사야
      제25과 포로된 자들에게 대한 위로 / 제26과 미가 / 제27과 요시야의 종교개혁 / 제28과 예레미야 / 제29과 스바냐, 나훔, 하박국 / 제30과 에스겔 / 제31과 바벨론 강가에서
      제32과 포로 이후 시대의 역사 / 제33과 새로운 시작 / 제34과 역대상, 역대하 / 제35과 말라기, 요엘, 룻기, 요나, 에스더 / 제36과 시편 / 제37과 지혜서 / 제38과 다니엘 / 제39과 외경와 위경
      제40과 메시야에 대한 기대들

    3권 신약성경 권별 내용

      1.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기본적 신앙 요소
      2. 예배 활동
      3. 팔레스틴에서의 유대교 운동들
      4. 예수님과 율법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 견해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내의 유대교는 외국 세력으로부터 그 순수성을 보전하였고, 이스라엘 밖의 유대교는 헬라와 로마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견해는 그 지지 기반을 상실해 가고 있다.
      고고학은 이스라엘 내의 많은 회당들의 헬라적 특징들을 밝혀 준다. 랍비들의 저술은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들이 헬라의 문화, 사상들, 용어들, 해석 방식들을 선호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과 지중해 주변에 거주하는 유대인 사이에는 왕래가 있었다. 예를 든다면 해마다 사절단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파견되었다. 이들 흩어져 생활하는 유대인들은 매년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납부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왕래 결과 유대인들 간에는 어디서든지 특정한 사상의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은 도처에 있는 회당을 통하여 표현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가 복잡하고 또한 여러 종파들과 교류들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도처의 유대교는 공통적인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1.유일신 신앙
      헬라 정신은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모색하였고 세계 및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히브리 정신은 하나님을 통하여 세계와 그 삶을 설명하였다. 이 히브리 정신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알리셨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곧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모든 피조물과 생명의 주님이시며(신 6:4),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이었다(출 4:21,22).
      포로 시대 이후 동안 유대인들은 점증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B. C. 3세기 이후 성경을 낭독할 때 야웨라는 이름은 읽지 못하도록 되었고 그 대선 아도나이(주님)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구약의 헬라어 역본(70인 역)은 야웨를 퀴리오스(주님)로 번역하였다.
      또한 탈굼 역본(히브리 성경의 아랍어 번역본)은 메므라(말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속죄일의 의식에 있어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중얼거리기만 하였는데 이는 아무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을 고유 명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 선들 가운데 하나의 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가 창조된 모든 것 위에 계시고 그것들을 초월하신 분임을 선언하였다.
      혹자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이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을 떼어놓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대교는 인간은 하나님의 쉐키나(Sheknah, 구름)이나 또는 독사(Doxa, 영광)를 통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응수하였다.
      비록 쉐키나는 천지에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은 특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러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그의 성령을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자신의 음성을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마 3:17 ; l7:5 ; 요 12:28을 보라).
      (그림 l 예수님 당시 유대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유일신론, 민족주의, 율법이 유대민족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절기들은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회상과 관련되었다. 유대교 내의 중요한 두 집단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예언서, 성문서(우수한 두루마리들)를 권위 있는 달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구천 율법(작은 토판들)도 기록된 율법처럼 신자에 대한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육체(그림에서 판자조각으로 만든 문)의 부활을 믿었으며, 메시아의 도래를 가대하였고 또 그가 오실 때 흩어져 생활하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이 팔레스틴(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화살표들)으로 돌아오리라고 말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오경(다섯 두루마리들)만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구전 율법과 육체의 부활은 부정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유대교의 태도는 경외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비록 잠언 1장 7절이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호와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신앙이라는 용어와 동의어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경외 못지 않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2.민족주의
      애굽으로부터의 구출이라는 능력 있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은 그의 최상의 소유였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존재하였다. 그는 이 민족을 그의 장자라고 부르셨다(출 4:22,23).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곧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받는 고통은 하나님이 당하시는 고통이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단련시키기는 하시지만 그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요 인도자이셨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은혜 때문에 그의 백성이 되도록 선택하셨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과거의 행위들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하여 일 하시고자 선택하신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기는 하셨지만 이러한 사실이 이스라엘의 다른 민족들에 대한 우월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비록 죽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라는 책임을 부여해 주셨다. 이스라엘의 존립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율법을 연구하고 준수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스라엘은 영원한 백성이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고 또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상화되었다. 이러한 우월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영토에도 적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머물기를 기뻐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성별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들은 메시아 시대가 열리면 죽은 자 가운데서 최초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산다는 것을 공로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은 죄였다. 이스라엘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서 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의 상정이었다.
      이방인들을 향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어떠하였는가?
      첫째로, 그들은 이방 세계에 대한 그들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는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인들이라 부르는 이방인들을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이요,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죄를 범하였고 이스라엘을 억압하였기 때문이다. 일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해 노골적인 증오를 나타냈고, 이러한 증오는 환난의 시기와 그러한 환경들을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둘째로, 이방인들을 향해 보다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경향도 있었다. 어떤 랍비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역시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 가운데 거하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방인들의 이러한 잘못을 변명하고 그들의 미덕을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즉 그들이 범죄 하였을 때 그들은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다기보다 민족적 관습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행하였던 선행에 주목하였다.
      로마 황제를 위한 정기적인 기도들이 드려졌다. 또한 장막절에는 이방 세제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수소들이 제물로 드려졌다. 어떤 이들은 메시아 시대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개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이 당할 운명에 대해 양심상 괴로움을 느꼈고 그 결과 유대교 개종자를 얻기 위하여 광범위한 선교 운동이 착수되었다.
      하지만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은 유대 백성으로 귀화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비유대인으로서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유대인이 되어야만 하였다.

      3.율법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실재하신 분이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영원한 관계가 존재하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은 보통 한글로는 율법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Law"로 번역되는 토라였다. 불행하게도 Law라는 용어는 토라를 번역한 용어가 아니라 토라에 대한 헬라어 오역인 노모스를 번역한 것이다.「토라」는 율법보다 더 광범위한 용어이다
      그것은 종교적 가르침, 계시, 교훈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시내산에서 주어진 전체 계시에 적용되었다. 이 용어가 엄밀하게 법률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토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계명들과 규례들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발견하거나 고안해 낸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물로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율법은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가?
      (1) 전체 율법의 핵심적 부분인 십계명.
      (2) 일반적으로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오경.
      (3) 구약 전체-구약 전체가 거룩하다고 하더라도 그 문서들 가운데 우위성을 지닌
      것은 모세오경이며 구약의 나머지는 결국 사라지게 될지라도 오경만은 장차 올 시대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4) 기록된 율법 외에도 구전 율법이 있었다.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율법을 변화하는 환경들에 적용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관례는 신약에서 조상들의 유전이라고 불린 구전 율법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구전 율법은 율법 주변에 둘러친 보호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기록된 율법은 가장거룩한 날인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면 무엇을 노동이라고 하는가? 랍비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의하는 39개의 규정들을 결국 만들었다. 구전 율법의 관심은 기록된 율법에 대한 어떠한 위반도 피하자는 것이다.
      구전 율법의 관심은 기록된 율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있다. 공동체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수행할 수 없는 규례가 포고되어서는 안되었다. 팔레스틴 내의 모든 집단들이 구전 율법을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사두개인들이 그러하였다. 어떤 집단들은 그 전통의 일부만을 받아들였다.
      구전 율법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원리상 그것은 기록된 율법과 같은 권위를 지니며 심지어 어떤 랍비들은 기록된 율법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뿐 아니라 기록된 율법과 마찬가지로 구전 율법도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주장함으로 그것들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였다.
      모든 랍비의 결정들 및 율법에 영향을 미친 모든 문법적 문제들과 기타 문제들은 시내산에서의 그 경이로운 사건에로 소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사실에 입각한 판단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구전 율법의 가치를 세워 주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전 율법은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A. D. 2세기 말경에 완전한 것은 아니었으나 미쉬나(반복)라는 법전으로 편찬되었다. 이 미쉬나는 구전으로부터 유래된 규례들을 체계적으로 집성한 것이다. 미쉬나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부분적으로 토셉타(Tcsephta, 완성)가운데 보전되었다. 토셉타는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미쉬나와 유사하다. 히브리어 동사「배우다」에서 유래된 탈무드라는 용어는 유대교의 종교적 저작들의 전체 수집물에 적용된다.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모세는 마치 거인과 같은 존재로 유대언의 사상을 지배하였다. 일반적 견해는 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은 영원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메시아 시대에 새 율법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관한 일반적 견해가 있기는 하였지만 율법은 의심 없이 죽기까지 순종해야 했다. 설사 그것이 이 시대와 장차 올 시대에 있어서 이해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하였다.